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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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농민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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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소작쟁의
1924.10 ~ 1925.05
지도소작쟁의는 1924년 10월부터 1925년 5월까지 전개되었다. 지도에서는 1924년 1월경 김상수 등이 주도하여 지도소작인공조회를 결성하였고, 그해 10월경 논 소작료 4할, 밭 소작료 등급 조정 등을 결의하였다.
일본인 지주 하시모토 요시사다[橋本瀨貞], 우치다 유우키[內田佑義]는 한국인 지주 박종섭 등과 함께 지주회를 결성하고, 하수단체로 지주소작인번영회를 조직하였다.

1924년 11월 지도소작인공조회가 임시총회를 열었으나, 지주회와 번영회의 방해로 무산되었다. 이듬해 1월 흥업회사(興業會社)가 소작료를 강제로 거두자 이에 반발해 불경동맹(不耕同盟)이 일어났다.
1925년 2월 지도소작인공조회 등 4개 단체에 의해 ‘을축동맹’이 결성되고, 지주에 대한 대응을 강화하였다. 이 과정에서 소작운동선전대 활동을 하며 마을을 순회하던 이독갑과 번영회 박채언 사이에 폭력 사건이 일어났다. 지주 박종섭은 박채언을 회유해 가짜 진단서를 만들게 하고, 이 진단서를 가지고 폭력 혐의로 소작인공조회 간부들은 고소하였다. 결국, 1925년 2월 27일 나만성 등 소작인공조회 간부들이 목포경찰서에 체포되었다.

3월 소작인공조회는 번영회 해체·소작권 이동 반대 등을 내세우며 지주회와 협상을 원했으나, 지주회는 더 가혹한 협상안을 가져올 뿐이었다. 이에 분개한 소작인공조회는 지주회 회장 박종섭 집 앞으로 몰려가 3일간 항의를 지속하였다. 이 과정에서 박채언의 진단서가 조작되었다는 것이 들통나면서 지주회는 위기에 처하였다. 1925년 3월 28일 지주회·번영회·유지회·면사무소 등 네 단체가 모여 타협한 결과 소작료 4할, 밭 소작료 조정, 소작권 철회 등을 합의하였다. 이후에도 소작권을 빼앗겼던 소작인들은 낙작인회(落作人會)를 결성해 4월까지 투쟁을 이어갔다. 지도소작쟁의 과정에서 구속된 이들에게 광주지방법원은 1925년 7월 3일 최대 징역6월을 선고하였다. 구속된 지 5개월이 지난 시점이었다.

지도 소작쟁의 활동과 관련하여 현재 확인된 수감자는 총 6명이다

신안군 항일농민운동 연표

1924년
  • 01지도소작인공조회(智島小作人共助會) 결성
  • 06.지도소작인공조회, 보리 2,000석 불납동맹 전개
  • 09. 28. 지도소작인공조회, 지도면민대회에서 소작료 인하문제 논의
  • 10. 08. 지도소작인공조회 임시총회를 개최, 논 소작료 4할, 밭 소작료(면화) 인하 결정.
    불응한 지주에게는 소작료 불납을 결의하기로 결정함
  • 10. 지도소작인공조회, 지도 지주측과 논 소작료 4할 합의
  • 10. 지도 대지주들, 지도소작인공조회에 대항하여 지주회(地主會) 결성
  • 10. 지도 지주회, 하수단체인 지도소작인번영회(智島小作人繁榮會) 결성
  • 11. 06. 지도소작인공조회 임시총회를 개최, 밭 소작료 인하 요구
  • 12. 10. 지도 지주회, 논 소작료 4할을 승인하는 대신 밭 소작료를 지주들의 요구대로 할 것을 제안
  • 12. 14. 지도소작인공조회, 지주회의 요구 승낙
  • 12. 지도소작인번영회, 면장 김용환(金容煥)과 지도소작인공조회가 불신하도록 간계를 꾸밈. 이로 인해 지도소작인공조회와 지주회의 갈등 악화
1925년
  • 02. 지도소작인공조회, 임은노동조합(賃銀勞動組合), 지도청년회(智島靑年會), 무산자동맹(無産者同盟) 네 단체는 마을별 소작단체를 결성하기로 합의
  • 02. 04.~16. 지도에서 총 36개 을축동맹(乙丑同盟) 결성됨
  • 02. 을축동맹 결성 과정에서 지도소작인공조회 회원과 지도소작인번영회 박채언(朴彩彦) 사이에 몸싸움 발생
  • 02. 지도 지주회, 박채언이 큰 부상을 당한 것으로 위조하고 경찰에지도소작인공조회 간부들을 고소
  • 02. 27. 지도소작인공조회 간부 나만성, 조영희(曺永喜), 박용일(朴鎔逸), 이성지(李聲智), 양원묵(梁元黙), 강평옥(姜平玉), 강종수(姜宗洙) 경찰에 체포
  • 02. 28. 지도소작인공조회 간부 주명식(朱明植), 박재실(朴裁實) 체포
  • 03. 01. 지도소작인공조회 정기총회를 개최, 향후 투쟁방향 논의
  • 03. 02. 지도소작인공조회 간부 박재실, 강평욱, 강종수 석방
  • 03. 17. 지도 소작인 400여명 면사무소에서 시위
  • 03. 17. 지도 유지회(有志會), 지주회에 타협안 제시
  • 03. 25. 지도소작인공조회 소작인 1,000여명 면사무소 앞에서 철야농성 실시
  • 03. 26. 지도소작인공조회, 지주회 회장 박종섭(朴鐘燮)의 집 앞에서 시위 실시
  • 03. 27. 지도면사무소에서 유지회와 면장 김용환이 지주회, 지도소작인번영회에게 타협할 것을 제안
  • 03. 지도 지주회, 논 소작료 4할, 밭 소작료 면화 18근~10근 수용할 것을 발표
  • 03. 29. 지도소작인공조회, 임시총회를 통해 지주측의 제안을 수용
  • 04. 09. 지도에서 소작권을 돌려받지 못한 소작인들, 낙작인회(落作人會) 결성
  • 04. 24~25. 지도 낙작인회와 지도소작인번영회 회원들 대치
  • 04. 26. 지도 지주들, 낙작인회 소작인들에게도 소작권을 돌려주기로 합의
  • 05. 26. 지도소작쟁의 관련 나만성 외 6명 최대 징역 6개월의 실형 선고
1926년
  • 0103. 21. 지도소작인공조회, 지도농민조합(智島農民組合)으로 변경
  • 03. 21. 을축동맹, 농민단(農民團)으로 변경

수감자 명단 (가나다 순)

순번 이름 형량 활동사항(판결물 내용)
1 나만성
(羅萬成)
징역 6월
  • 지도소작인공조회 이사
  • 임은노동조합 위원장
  • 지도소작쟁의 주도로 징역 6월을 선고받음
  • 1993년 건국포장 추서
2 박용일
(朴鎔逸)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
  • 지도소작쟁의 주도로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음
3 양원묵
(梁元黙)
벌금 20원
  • 지도소작쟁의 혐의로 벌금 20원이 선고됨
4 이성지
(李聖智)
벌금 20원
  • 지도소작쟁의 혐의로 벌금 20원이 선고됨
  • 2023 대통령표창 추서
5 조영희
(曺永喜)
징역 6월
  • 임은노동조합 집행위원
  • 지도소작쟁의 주도로 징역 6월을 선고받음
  • 2023 대통령표창 추서
6 주명식
(朱明植)
벌금 20원
  • 지도소작쟁의 혐의로 벌금 20원이 선고됨
  • 임은노동조합 집행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