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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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농민운동
도초도

도초도

도초도 소작쟁의
1925.09 ~ 1925.10
‘도초도 소작쟁의’는 1925년 9월부터 1925년 10월까지 2개월간 전개되었다. 도초면의 소작인들은 1924년 10월 김용택의 주도하에 ‘도초면 소작인회’를 조직했고, 소작 조건의 유지와 개선 등을 위해 힘을 모았다.

소작인회는 1925년 9월 21일 소작료를 징수하기 위해 파견된 집달리(법원에서 재판의 집행과 사무를 시행하는 사람) 3인과 목포경찰서 경관 2인에게 저항하여 징수를 못하게 하였다. 또한, 10월 7일 집달리 츠노다 스스무[角田進], 미조네 신조[溝內新三] 등이 경관과 함께 도초면 발매리에 상륙했을 때에도 수백명의 소작인들이 곤봉과 몽둥이를 들고 무력시위로 저항하여 막아냈다. 이때소작인 대표는 집달리와 교섭을 시도하였으나, 협상은 결렬되었다.

이후 10월 11일 지주 아마노 쇼사쿠[天野庄作]와 김준기 등이 목포를 비롯한 인근 경찰서의 지원을 받아 도초도로 들어왔고, 소작인회 김용택 외 20여 명을 체포하여 목포로 압송하였다. 체포된 소작인회 간부들은 이듬해인 1926년 5월 10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최대 징역 10월형을 선고받았다. 도초도 소작쟁의 결과 지주들은 요구 조건인 소작료 답(沓) 4할, 전(田) 3할에 대해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도초도 소작쟁의 활동과 관련하여 현재 확인된 수감자는 총 21명이다

신안군 항일농민운동 연표

1924년
  • 10도초소작인회(都草小作人會) 결성
  • 10. 중순 도초소작인회, 중도청태랑(中道清太郞) 등 도초도 지주들에게 논 소작료 4할, 밭 소작료 3할 통보
  • 10. 중순 도초도 대다수 지주들, 도소소작인회의 결의안 수용
  • 12. 이전 도초청년회(都草靑年會) 결성
1925년
  • 여름. 도초소작회, 지주들에게 보리소작료 지불통지서 발송
  • 08. 다도농담회(多島農談會) 결성, 도초소작인회 4할 거부
  • 08. 15. 도소소작인회, 지주 측이 가차압을 강행할 경우 일치단결하여 저지할 것을 결의
  • 09. 21. 도초소작회 400여명, 불납소작료를 가차압하기 위해 입도한 집달리 및 경관과 화도부두에서 충돌
  • 10. 도초도 지주 시야장작(矢野庄作), 김준기(金俊基), 보리소작료를 징수하기 위해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 가차압 집행 신청
  • 10. 07. 도초소작회, 불납소작료를 가차압하기 위해 재차 입도한 집달리 및 경찰과 충돌, 집달리 및 경찰 목포 철수
  • 10. 07. 도초소작회, 집달리들이 재차 차압하러 올 경우 저항할 것을 결의
  • 10. 10. 이전 목포경찰서, 도초도 불납동맹을 집행하기 위해 광주, 나주에서 경찰 비상소집
  • 10. 10. 중도(中島) 목포경찰서장의 지휘로 120여명의 무장경관 도초도 입도
  • 10. 10. 도초도 주민과 경찰 사이에 대규모 충돌이 발생했으며, 도초소작회 간부 20여명 체포되고 다수의 부상자 발생
  • 10. 11. 목포경찰서, 도초소작회 간부 20여명을 체포하여 목포로 귀환
  • 10. 12. 도초소작회 간부들 비밀리에 광주지방법원 검사국 송치
  • 10. 12. 도초소작쟁의를 조사하기 위해 경성노농회(京城勞働會)에서 이광(李珖) 파견
  • 10. 16. 도초소작회 임시총회 개최, 지주에 대한 성토문 작성하여 전국 단체에 발송, 불납동맹을 계속할 것을 결의
  • 10. 16. 도초소작회 회원 200여명, 원정투쟁을 위해 목선 네 척을 타고 목포로 이동
  • 10. 18. 도초소작회 회원 200여명, 목포경찰서에서 구속자 석방시위 단행, 경찰에 의해 15명 검속됨
  • 10. 19. 도초소작회, 대표를 선정하여 구속자 석방 및 소작료 4할 방해하지 말 것을 요구
  • 10. 19. 도초소작회, 목포경찰서 목촌(木村) 경부와 교섭한 끝에 검속된 15명 석방
  • 10. 20 경 도초소작회 회원들, 구속자 석방을 위해 광주 원정시위 계획
  • 10. 22. 광주로 원정시위를 떠났던 도초소작회 회원들 나주 경찰에 의해 체포, 목포로 강제 이동, 대표 5명만 광주로 이동
  • 10. 23. 도초소작인 회원들 목포정거장에 감금
  • 10. 23. 광주로 간 도초소작회 대표들, 광주노동공제회관에서 광주지역 단체 대표자들과 선후책 논의
  • 10. 25. 목포 경찰, 도초소작쟁의 조사차 도초도에 입도하려던 조선노총(朝鮮勞總), 전남노련(朝鮮勞總), 순청농대(順天農大) 대표자 입도 금지함
  • 10. 26. 도초소작회, 임시총회를 개최하고 소작료 4할 결의 및 구속 간부에 대한 사항 결의
  • 10. 경 도초소작회, 2차 광주 원정투쟁 계획, 대표로 김인홍(金仁洪), 명양준(明良俊)를 선발하여, 광주에서 광주지방법원 검사청과 전라남도 경찰부장 면담
  • 11. 경 도초소작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목포경찰서장 및 무안군수, 도초소작회 대표와 수차례 면담을 가짐
1926년
  • 02. 15. 도초소작인회, 도초농민조합(都草農民組合)으로 변경
  • 02. 22. 도초소작쟁의 관련 강기수(姜基秀), 김용정(金容廷) 외 8명 면소 출감
  • 05. 03. 도초소작쟁의 관련 김용택(金容澤) 외 15명 최대 징역 10개월의 실형 선고

수감자 명단 (가나다 순)

순번 이름 형량 활동사항(판결물 내용)
1 강경용
(姜京鎔)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
  • 도초면소작인회원
  • 경계 중인 경관을 밀치고 군중에게 ‘싸우자’라고 외침
2 강기수
(姜基秀)
면소
  • 도초도 소작쟁의에 참여함
  • 1926년 3월 19일 면소 판결 받음
3 고경일
(高京日)
벌금 30원 환형유치일수 30일
  • 차압하는 집달리를 저지함
4 고만희
(高萬希)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
  • 도초면소작인회 집행위원
  • 순사 김대원(金大元)에게 돌을 던지고, 바다 속에 넣음
5 고점수
(高占水)
면소
  • 도초도 소작쟁의에 참여함
  • 1926년 3월 19일 면소 판결 받음
  • 2021년 대통령표창 추서
6 고형빈
(高亨彬)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
  • 도초면소작인회원
  • 일본순사 부장을 구타하고 경계 중인 경관에게 돌을 던짐
  • 2022년 대통령표창 추서
7 김병섭
(金秉燮)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
  • 도초면소작인회 집행위원
  • 차압을 하러온 집달리를 방해하기 위해 선동함
8 김상희
(金相喜)
징역 8월 미결구류일수 40일 본형에 산입
  • 도초면소작인회 집행위원
  • 차압 하러온 집달리를 방해하기 위해 선동함
9 김양보
(金良寶)
면소
  • 도초도 소작쟁의에 참여함
  • 1926년 3월 19일 면소 판결 받음
10 김용정
(金容廷)
면소
  • 도초도 소작쟁의에 참여함
  • 1926년 3월 19일 면소 판결 받음
11 김용택
(金容澤)
징역 10월 미결구류일수 40일 본형에 산입
  • 도초면소작인회 회장
12 김종보
(金宗寶)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
  • 차압 하러온 집달리를 협박
13 김종원(金宗元)
김종언(金宗彦)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
  • 도초면소작인회원
  • 군중의 선두에 서서 ‘자네들은 어째서 가만히 있는가. 일동 경찰관을 때리거나 쫓아내자’고 소리치며 솔선함
  • 2018년 대통령표창 추서
14 김행중
(金行仲)
벌금 30원 환형유치일수 30일
  • 경찰관에게 돌을 던짐
15 문상연
(文尙淵)
징역 7월 미결구류일수 40일 본형에 산입
  • 도초면소작인회원
16 박남기
(朴南基)
벌금 30원 환형유치일수 30일
  • 경찰관에게 돌을 던짐
17 박정수
(朴正水)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
  • 도초면소작인회원
  • 차압 하러온 집달리를 협박
18 박창진
(朴昌珍)
징역 7월 미결구류일수 40일 본형에 산입
  • 도초면소작인회 집행위원
  • 차압 하러온 집달리를 방해하기 위해 선동함
19 부태담
(夫太淡)
면소
  • 도초도 소작쟁의에 참여함
  • 1926년 3월 19일 면소 판결 받음
20 최동민
(崔東珉)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
  • 도초면소작인회원
  • 군중에게 ‘구인된 자를 탈환하자’라고 외치며 솔선함
  • 2021년 대통령표창 추서
21 최창수
(崔昌洙)
면소
  • 도초도 소작쟁의에 참여함
  • 1926년 3월 19일 면소 판결 받음
  • 2021년 대통령표창 추서